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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01월 26일
2006년 01월 24일
우분투가 사운드카드를 잡았는데도 불구하고 소리가 나오질 않았다. 노트북 펑션키도 되는데 ㅠㅠ 왜 안나오는건지
한동안 맘고생이 심했다. 오늘 그 이유를 알았다 ㅋ 혹시나 같은 증상으로 맘고생 하시는 우분투 입문자들을 위해.. 먼저 터미널을 열자. lspci 명령어는 모든 PCI 장치를 볼 수 있다. lspci |grep -i audio 치면 사운드 카드 하드웨어 정보가 나온다. 저같은 경우에는 Intel Corp. 82801FB/FBM/FR/FW/FRW (ICH6 Family) High Definition Audio Controller (rev 03) 이 뜨더라. 노트북에 있는 내장 사운드다 ㅋ alsamixer를 입력한다. 음량을 조절할 수 있는 인터페이스가 뜬다. 잘보면 음량 막대 아래 00 과 MM 이 보일 것이다. 00은 on 이고 MM은 mute 이다 ㅠㅠ m키를 이용해 음소거를 on 시키면 ㅠㅠ 소리가 나온다. 이런 간단한 기능을 몰라서 그토록 헤매었다니..ㅋ 하지만 기분은 좋다. 2006년 01월 23일
hanirc 라는 것을 알아버렸다 ㅋ 우분투 채널에 들어갔는데 55명이나 있었다.
혼자서 웹을 막 헤메이다 이렇게 사람들을 만나니 너무 반가웠다ㅠㅠ 하지만 아직눈팅이다. hanirc는 XChat IRC에 서버가 등록되어 있지 않다. 추가해줘야 한다. 아래 서버중 하나를 선택하여 서버 목록에 추가한다. 추가할땐 holywar.hanirc.org/6667 이런 식으로 아래 문자설정을 CP949 (Korean)으로 해줘야 한다. ㅋ 이러고선 대화방에서 #ubuntu를 찾는다 ㅋ 2006년 01월 23일
한영키 설정을 위해 터미널에서 아래와 같이 입력한다.
# sudo setkeycodes 71 113 # sudo setkeycodes 72 109 # xmodmap -e "keycode 113 = Hangul" # xmodmap -e "keycode 109 = Hangul_Hanja" ~/.Xmodmap 에 아래의 코드를 추가한다. keycode 113 = Hangul keycode 109 = Hangul_Hanja 로그아웃 후 다시 로그인하면 나비가 .Xmodmap 파일을 읽어들일 것인지 물어본다. .Xmodmap을 선택하고 확인한다. 출처 : http://ani2life.egloos.com/2109296 2006년 01월 16일
도서관 5층에는 ‘한•독 문화 연구소’ 라는 곳이 있다. 6층에 심리학과 실험실이 있기 때문에 계단을 올라가면서 항상 그곳을 지나치게 된다. 가끔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저 곳에서 독일 통일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좋겠다. 국가에서 필요로 하는 학문을 하고 있으니… 밥벌이가 되겠지.’ 오늘 그 연구소에 계신 김누리 교수의 ‘독일 통일과 지식인’ 이라는 글을 읽었다. 89년 동독과 서독의 통일 이후 10년간 분단 아닌 분단의 길을 걸어왔던 독일의 모습과 그 이유를 살펴보면서 나는 새삼 몰랐던 것을 깨달았다. ‘한•독 문화 연구소’를 지나치면서 느꼈던 나의 생각에는 자본주의 논리가 깔려있었던 것이다. 통일에 관한 연구를 밥벌이로 밖에 인식하지 못하는 나의 자본주의 마인드가 새삼 놀랍다.
자본주의와는 다른 공산주의(혹은 사회주의)체제 안에서 살고 있는 북한 인민들의 마인드는 어떠할까? 공산주의라고는 하지만 이미 김정일을 중심으로 한 권력체계가 잡혀있다. 북한에서의 권력을 무엇을 뜻하는가? 북한에서 국가대표 축구선수가 되면 출세가 보장된다. 출세가 보장된다는 것은 그만큼 생활의 여유가 생긴다는 것이다. 북한 사람들은 좀 더 나은 생활을 하기 위해 좀 더 나은 사회에서의 위치를 차지하려고 노력한다. 권력이 좀 더 나은 생활을 누릴 수 있는 지름길과 같다. 만약 북한과 같은 사회 속에서 내가 살아왔다고 가정한다면, ‘한•독 문화 연구소’를 지나치면서 나는 이런 생각을 할 것이다. ‘저 곳에서 통일을 연구하는 사람들 중에는 당간부가 몇 명이나 있을까. 교수가 있다면 배따시게 잘 먹고 연구하것네.’ 권력에 바탕한 생활의 안정을 목표로 하는 북한의 나와, 자본에 기초한 생활의 안정을 목표로 하는 남한의 내가 같은 사회에서 살게 된다면 어떠한 일이 벌어질 것인가? 신자유주의와 자본주의를 표방하는 세계화 과정에서 당연히 ‘남한의 나’와 ‘북한의 나’가 경쟁관계에 놓였을 때 ‘남한의 나’가 우위에 서게 될 것이다. 어쩌면 ‘남한의 나’는 ‘북한의 나’에게 “우둔한 북한놈.” 이라고 멸시할지 모르고, ‘북한의 나’는 ‘남한의 나’에게 “야비한 남한놈.”이라고 분노할지 모른다. 이 가정은 ‘북한의 나’와 지금의 내가 같은 경제력을 가지고 있다는 전제하에서 생각해 본 것이고, 실상은 북한의 경제력이 남한보다 약하기 때문에 경쟁 자체가 되지 못한다. 동독과 서독이 그러했듯이, 남한과 북한도 통일에 의한 또 다른 분단의 여지가 있다. 지금의 동독 사람들이 ‘동독 정당’ 만을 지지하는 것처럼, 한국 또한 무수한 권력의 분립과 대립이 일어날 것이다. 물론, 정치 체계가 이원제가 될지 일원제가 될지, 과연 통일이 될지 아무도 모르는 판에 이런 얘기를 하는 것은 아직 이를 수도 있다. 하지만 차차 준비해놓지 않는다면, ‘베를린의 장벽’이 무너지면서 동독 사람들이 서독의 어느 백화점으로 몰려갔던 그 역사의 모습을 재현하게 될 것이다. 2006년 01월 13일
※ 이 글은 중앙대학교 교지편집위원회 중앙문화의 겨울 세미나 발제 내용 입니다.
권위주의를 양산하는 대한민국의 지배층의 음모
생각 같아서는 이렇게 권위주의와 폭력, 맹종을 일삼는 군대를 없애버리고 싶습니다. 아니, 현실적으로 돌아와서 징병제를 폐지하고 모병제를 도입하여 권위주의와 폭력의 양산을 막고 싶습니다. 차라리 미국처럼 첨단 무기를 증강시키고 징병제를 점차 모병제로 전환한다면 더욱 강한 군사력을 보유할 수 있을 텐데 왜 그러한 변화가 없을까요? 그렇게 단순한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알지만서도 변화를 바라지 않는 군 상층부의 모습은 답답하기만 합니다. 구타가 완전히 없어질 수 없는 이유는 군대에 대한 지배층의 실제적 요구와 밀접한 관계에 있다. 지금도 나라의 운명을 실질적으로 좌우하는 한국의 보수정객과 재벌들이 요구하는 인간상은 평상시에는 ‘상전’을 위해서라면 비자금 조성이든 세금 탈루든 필요 없는 자동차 계획 추진이든 가리지 않고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충복’이고, 유사시에는 아무런 생각도 양심의 가책도 없이 동족을 쏘아 죽일 수 있는 ‘강인한 애국자’다. ….(중략) 징병제의 존재 명분으로 보통 북한군의 남침의 위협을 드는데, 이는 어디까지나 합리화 수단에 불과하다. 남침 위협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사병의 사기나 전문 수준이 낮은 의무 군대보다는 기술 수준이 더 높은 모병제 군대가 위험을 방지하는 데 더 적합할 것이다. 징병제를 일종의 성역으로 만들어놓고 모병제는 물론이거니와 서구 모든 국가에 잇는 신앙에 따른 병역 거부권과 대체 근무까지도 허용하지 않으려는 당국은 북한의 위협보다 군대 복무의 ‘교육적 효과’를 의식하는 것이다. 내무반에서 병장에게 얻어맞지 않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아첨을 떤 경험이 있는 사나이라면, 재벌 주인이나 국가 관료에게 ‘말대꾸’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하는 것이 한국 지배층의 상식인 듯하다. - 박노자의 ‘아직도 폭력이 충만한 사회’ 중-
만약에 군대의 변화가 이루어지지 않는 이유가 상층부의 안일함과 지배층의 보수에 있다고 한다면 정말 기가 막힐 노릇입니다. 자세히 알지도 못하고 이렇게 떠들어대는 것이 부끄럽기는 하지만, 워낙 군대에 기밀이 많아서 알 수가 있어야지요. 뉴스에서 종종 보도되고는 하는 군대 내에서의 여러 사건들은 군대의 변화를 야기시키고는 합니다. 김일병의 사례나 변기 물을 마신 사건 등의 보도가 터져나올 때마다 군 관계자가 나와서 사과를 하고 대책을 강구합니다. 하지만 박노자씨의 말처럼 보수정권과 징병제가 있는 한 폭력에 의한 사고는 정도 완화만이 가능할 뿐 엄금할 수 없습니다. 김일병과 같은 사태는 극소수의 사례 일지 몰라도, 대한민국 남성의 대부분은 김일병과 같은 세계에서 나름대로 타협을 하고 그 세계에 동화되어 살아가야 합니다. 몇 명의 신념을 가진 자들이 이런 말을 합니다. “내가 군대에 가면 군대의 불합리한 부분들을 싹 다 바꿔버리겠다.” 이 말은 “내가 북한에 가면 김일성을 찬양하는 북한 주민들의 의식을 싹 다 바꿔버리겠다.” 라는 말처럼 들립니다. 어떤 집단이나 조직의 관습이나 의식을 바꾼다는 것은 참으로 어렵습니다. 기껏 군대에 가더라도 권력구조 하에서 최대로 올라갈 수 있는 계급은 병장입니다. 병장 위의 그 무수히 많은 윗대가리 분들의 의식이 바뀌지 않는다면, 군내에서의 빈번한 언어적 폭력과 구타는 권력에 대한 맹종 환자들과 폭력 무기력증 환자들을 양산해 낼 것입니다.
군대와 한국사회, 그리고 여성들
한국사회는 이러한 군대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요. 우리 사회는 아직 군 개혁의 목소리 보다는 군 입대를 사회적 의무로 마땅히 받아들이는 모습이 다수 입니다. 원빈이나 문희준 같은 연예인들이 자랑스럽게 군대에 입대하는 뉴스를 보더라도 알 수 있지요(문희준은 군 입대 후 안 좋은 이야기들이 싹 사라졌습니다). 또한, ‘유승준이 용인되지 않는 사회’와 ‘양심적 병역 거부’ 에 대한 논쟁을 보더라도 한국사회는 이미 사회적 의무로서의 군 입대를 당연시 하며 이야기를 전개합니다. 국방의 의무, 한국사회에 만연해 있는 이 국가주의 사상 때문에 우리는 쉽사리 군 문제에 대한 제기가 어려워 집니다. 어째서 한국사회는 국가주의 사상이 팽배해 있을까요? 북한과 휴전으로 대치되어 있는 특수한 상황이 국민의 사상을 키워낸 것은 아닐 것 입니다. 이 국가주의 역시 박정희 정권부터 지금까지, 혹은 그 이전부터 국민의 단합과 통제를 위해 존립해온 하나의 정치적 수단일 수 있습니다. 국가주의에 대해서는 좀 더 생각할 기회를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국가주의와 군대는 우리 사회에 전반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군대를 갔다 온 남성들은 군사주의의 문화를 경험하게 되고 이 영향력은 여성에게까지 미칠 것입니다. 군사주의와 군대를 갔다 온 남성들에 의한 여성들의 피해는 성차별적 남성주의 문화를 들 수 있다고 하는데, 이 점에 대해서는 저보다 여러분들이 더 자신 있게 말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군대와 세계’라는 주제를 가지고 군대 내에서의 폭력과 이를 방치하는 군 상층부의 모습, 그리고 이 모든 세계를 용인하는 국가주의가 만연한 한국사회의 모습을 되짚어 보았습니다. 이 글을 통해 많은 토론과 논쟁이 있었으면 합니다. 그것이 군대와 이 사회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하고 더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 하나의 의식이 되었으면 합니다. 오늘날의 군대에 대한 짧은 글을 마지막으로 저의 발제를 마칩니다.
'군대 갔다 와야 진짜 남자가 되고 어른이 된다' 라는 식의 말이 진리와도 같이 통용되는 우리 사회에서 '군 복무'는 대한민국의 소년이 성인 남자로 살아가는데 당연히 거쳐야 하는 통과의례 같은 것이다. 그 동안 사적인 관계 속에서 살아왔던 '소년'은 일정한 나이가 되면 혹독한 계급사회에 무방비상태로 던져져 '군인'의 얼굴을 배운다. 처음에는 위계구조 말단의 피해자로, 시간이 지나면서 가해자의 위치로 탈바꿈하는 법을 배우면서 명령과 복종의 권력관계 속에 심어진 비틀어진 남성성을 서로에게 권하고 강요한다. 군대라는 곳에선 누구나 한번씩은 피해자였고 또 가해자였기 때문에 일방적인 피해 의식이나 죄의식을 가지기보다는 단체의 행동과 룰을 합리화하게 된다. 그래서 그 시절에 보낸 인생의 시린 사춘기는 '지나고 보니 힘들고 고달팠지만 인생살이에 엄청난 도움을 준 곳'으로 기억되어야 하고 그렇게 대한민국 남자들이 공유하게 되는 '군대의 기억'은 감히 거부할 수 없는 룰이 되어 우리 사회에 또다시 경직된 위계질서를 만들어간다.
- ‘용서받지 못한 자’ 에 대한 씨네서울의 작품 평 중 - 2006년 01월 13일
※ 이 글은 중앙대학교 교지편집위원회 중앙문화의 겨울 세미나 발제 내용 입니다.
저번시간 ‘전쟁과 세계’라는 세미나를 통해서 전쟁과 폭력, 인권, 그리고 군위안부 문제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전쟁은 왜 일어나는 것일까요? 이유야 어쨌든 전쟁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죽었고, 지금 이 시간에도 죽어가고 있습니다. 전쟁의 목적을 부여한 자들이 죽는 것 또한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 주변에서 무고하게 죽어가는 생명들을 바라볼 때 더욱 안타깝습니다. 군 위안부 문제만해도 그렇습니다. 제국주의의 침략과 식민지화가 많은 여성들의 삶을 짓밟아 버렸습니다. 어째서 그들은 그런 끔찍한 정신적, 신체적 고통을 받아야만 했을까요. 입장을 바꿔서, 우리나라 역시 베트남전쟁에서 같은 과오를 범하지는 않았을까요. 전시에는 법이 없고 오로지 총과 폭력, 살인과 희생만이 존재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No War’를 외치고 있습니다. 하지만 과연 전쟁 없는 세상이 올 수 있을까요? 인간의 이기심이 평화를 질투하는지, 전쟁의 역사는 계속 쓰여져 왔고 앞으로도 수 많은 전쟁의 불씨가 도사리고 있습니다. 전쟁과 폭력 없는 세상을 위해, 오늘 이 시간이 평화로운 세상에 한발자국 더 다가갈 수 있는 의미 있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전쟁으로부터 평화를 지키기 위해, 폭력을 가르쳐야 하는 군대 “야 건영아, 너 군대 안 가냐?” “나 군대 가기 싫은데.” “야 대한민국 남자라면 군대를 갔다 와야지. 신성한 국방의 의무를 지켜야 될 꺼 아니냐.” 국방의 의무, 초등학교서부터 고등학교까지 참 많이 들었던 말입니다. 내가 나라를 지켜야 나의 가족과 주변 사람들이 평온하게 살 수 있다라는 논리가 머리 속에 세뇌되어 버렸습니다. 하긴 맞는 말입니다. 누군가 이 나라를 지키지 않으면 막강한 군사력을 토대로 북한이, 또는 미국이 쳐들어올지 알 수 없는 일입니다. 아무리 평화적 의식이 신장하였다고 해도, 이라크 폭격을 대놓고 TV로 보여주는 세상인데 뭔들 무슨 일이 안 일어나겠습니까? 적어도 다른 국가의 위협으로부터 우리나라를 지키기 위한 군사력은 필요합니다. 때문에 너도 나도 의무적으로 징병 통보를 받게 되고 군 입대를 하는 것이겠지요. (아니라고요?)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봐야 할 것이 있습니다. 분명 우리의 청년들은 나라의 평화를 수호하기 위해 군대에 들어갑니다. 하지만 군대에서는 적과 싸우기 위해 체력을 기르고, 적을 죽이기 위해 총 쏘는 법과 수류탄 던지는 법을 배우며, 적군과의 전투에서 승리하기 위해 Top-Bottom의 지시체계와 명령복종을 배웁니다. 한마디로 전쟁을 익힌다는 것이지요. 폭력을 익힌다고도 할 수 있겠네요. 적을 살상하는 훈련은 폭력을 행하는 법을 배우는 것과 마찬가지이니까요. 이렇게 생각해보니 군대는 참 모순된 모습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평화를 지키기 위해 폭력을 배우는 곳이니까요. 권위주의로부터의 폭력의 전도 이등병은 상관의 군화에 매일같이 물광을 내 갖다 바치는 것이 당연하고 고참은 신참 팬티를 뺏어 입어도 당당할 수 있다. 적을 살상하는 것을 넘어서, 폭력은 권위주의와 지시체계에서도 통용됩니다. 지금은 많이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구타와 욕설은 군대 내에서 존재합니다. 흔히 쓰는 말로 “갈군다” 라고 하는 군대 내의 폭력은 그 정도에 따라 인간을 자살로까지 몰고 갑니다.
저의 아버지 시대만 해도 군대 내에서의 구타는 치를 떨었다고 합니다. 아버지도 군대를 다녀오셨지만, 군대에서 상관에게 명령 불복종을 하였다가 귀를 얻어 맞아서 지금까지 휴유증이 남아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아버지는 제게 군대를 가도록 권유하고 있습니다. 이유는 군대에 가면 그 만큼 성장한다는 것이지요. 군대에 갔다 오면 어떤 점이 성장한다는 것일까요? 가보지 않은 저로서는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짐작할 다름입니다.
신성한 국방의 의무? 신성한 맹종 학습의 의무
성장한다는 것의 의미를 박모 선배로부터의 이야기에서 떠올려 봤습니다. “회사도 군대랑 별 다를게 없어. 군대보다 더 심하면 심했지.” 사회생활 역시 군대에서의 생활과 다르지 않다는 말입니다. 성장의 의미는 즉, 군대에서의 경험은 사회생활을 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병장에게 찍히지 않기 위해 갓 들어간 신참들은 온갖 너스레와 샤바샤바를 늘어 놓습니다. 군대 생활에 잘 적응하기 위함이죠. 그렇게 적응하는 법을 배운 우리의 신참은 대한민국이라는 사회에서도 잘 적응해 갑니다. 군대에서의 경험이 큰 발판이 되겠지요. 하지만 잘 생각해보면 그들은 위계질서와 명령체계에 잘 길들여졌다는 말과 같습니다. 일단 군에 들어가게 되면 권력의 위계질서에 따라 명령을 따르게 됩니다. 이것이 맹종 학습을 강요하게 되고, 불복종 할 경우 처벌을 받거나 군내에서 따돌림을 받습니다. 불합리한 것에 대해 조차도 복종하지 않을 경우 처벌이 가해질 수 있다는 이 체계는 정말 ‘맹종’ 이라는 단어가 잘 어울립니다.
“실컷 맞다가 나중에 속시원하게 실컷 때리고, 조직사회의 원리를 제대로 터득했다. 이제 시키는 대로 할 줄도, 시킬줄도 안다.”
군대에서는 지위체계 아래서의 심적, 물리적 폭력에 무감각해지는 것뿐만 아니라 그 권위를 행사하는 위치에 서기도 합니다. 흔히 짬밥이 되었다고 하죠. 권력구조로 본다면 이등병과 일병의 위에 위치하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고참의 위치에 서게 되면 그들은 명령을 내릴 수 있고, 처벌 또한 내릴 수 있습니다. 때문에 그들은 제대를 하고 나서도 군내에서의 복종과 명령을 모두 경험하였기 때문에 자신의 2년을 합리화하기가 쉬워집니다. (물론 제 생각입니다.) 이렇게 권위주의를 잘 체득한 예비역들은 이 마인드를 사회 생활에서도 내뿜습니다. 예를 들면, 회사에서는 상사를 잘 받들고 신입 사원들을 엄하게 대합니다. 이런 예가 모든 예비역들에게 통용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어느 정도는 2년간의 군대생활이 예비역들의 신체적, 정신적 경험에 습득 되었다고 생각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나요?
2006년 01월 13일
정격유착의 폐해와 부마민주항쟁 부산과 마산에서 항쟁이 일어난 이유와 걷잡을 수 없이 커진 이유는 “부마사태의 중요한 요인으로 지적된 것이 부가가치세 등 세금의 과중징수였다. 부산 지역의 경우, 1979년에 시민들이 낸 세금은 약 3,880억 원으로서 1978년보다도 무려 32퍼센트가 늘어났다. 이 세금과중은 보수적인 부산 중심지 상인들까지도 반정부 쪽으로 돌려놓아 부산사태의 확산이 이루어지는 계기가 되었다.” 다시 부마사태가 일어났을 때 중앙정보부장인 “ 민주적 열사로서 바라본 5월 16일 쿠데타 이후 쭉 대통령을 해오던 10.26이후의 정세, ‘안개정국’과 ‘서울의 봄’ 그리고 제 5 공화국 10.26 이후 정국의 주도권은 중앙정보부에서 보안사로 넘어갔다. 당시 보안사령관 4월 14일 5월부터 학생운동이 본격적으로 정치문제를 거론하고 나옴. 전국의 대학들은 ‘계엄해제’ ‘유신잔당 퇴진’’정부주도개헌 중단’을 슬로건을 내걸었음. 5월 9일 신민당의 5월 15일 공화당과 신민당이 총무회담을 열어 20일 국회를 열기로 합의. 2006년 01월 13일
“각하! 이 따위 버러지 같은 놈을 데리고 정치를 하니 올바로 되겠습니까?” “야수의 심정으로 유신의 심장을 쏘았다.” ‘부마민주항쟁’이 일어 난지 열흘 후인 10월 26일 계획적 거사냐, 우발적 범행이냐? 궁정동 안가에서 당시 “차 실장과 김 부장은 무슨 중요사안이 생기면 각하께 먼저 보고하려고 신경전을 벌였어요. 어찌 보면 교실에서 선생님을 향해 팔을 높이 쳐들고 ‘저요, 저요’ 하는 식이었어요. 권력은 그렇게 치사한 일면이 있는 겁니다.” 79년 역사적 흐름과 10.26
지금까지 10.26 사건만을 가지고 이야기를 했지만, 이제는 79년 시대적 흐름과 10.26을 같이 놓고 이야기를 해보자. 79년은 18년 YH농성 8월 13일 박정권은 신민당 원외지구당 위원장 3명을 사주하여 2006년 01월 12일
처음 우분투를 만져보다가.. 앗 한글이 입력 안된다는 걸 알았다..
냅다 지식인을 찾아보았다.. 한글을 입력하기 위한 과정!! export XMODIFIERS="@im=nabi" export GTK_IM_MODULE=xim 출처 : http://ubuntu.or.kr/wiki.php/InstallingInputMethods 방법은 찾아냈으나.. -- nabi 패키지를 설치하는 것까지는 쉬운데.. 터미널을 열고 부터.. 막막하다. 도스 비스무레 한데.. 명령어를 하나도 모르니 -_- 또 지식인을 막 휘젓고 다녔다. 그래서 명령어를 어느정도 익히고 ㅋ 이것도 링크 ㅋ 출처 : http://blog.naver.com/rmsrlqkd?Redirect=Log&logNo=60020642089 .gnomerc는 숨겨진 파일이란다. ls -al 을 치면 숨겨진 파일 목록이 쫙 나오는데, 역시나 .gnomerc는 없었다. 해서 vim이라는 에디터로 그 파일을 만들어주어야 한다. vi .gnomerc 하면 에디터 창이 뜨는데 -_- 이것도 완전 보통에디터하고 개념이 다르다. 아.. 배움의 길은 멀구나. http://www.joinc.co.kr/modules.php?name=News&file=article&sid=49 (vim 설명서 ㅋ) 쓰고 저장해서 파일을 생성하기까지.. 만 읽어봤다 ㅋ i 누르고.. 쓰고.. esc키 누르고 : 키 누르고 wq 누르고 엔터치면 끝 ㅋ 그다음부터는 순조롭다 ㅋ 한글이 떳을때 좀 기뻤다 ㅋ 뭔가 새로 하나씩 알아가는 기분이란 ^^;; 자 밑바닥부터 시작이다 ㅋ |